<코로나19에 따른 삶의 성찰과 신앙> : 마지막 모임 소고

관리자
20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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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 따른 삶의 성찰과 신앙> : 마지막 모임 소고


보이지 않는 질병의 코로나 19에 대한 충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월부터 3개월이 지난 5월 말 현재, 이태원발 확진자 증가의 여진이 계속 이어가고 있다. 이제는 포스트코로나에 대한 변화의 성찰들이 여러 곳에서 진행 중이다. 사회문화적으로 어떻게 달라지게 되는 지에 대한 수많은 담론과 교육계의 온라인화와 등교개학 및 온라인개학 등의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종교계에도 2달 넘게 일요일 집회로 인한 코로나확산염려로 역사상 처음으로 온라인 예배 혹은 교회 안가고 개인묵상으로 가는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코로나와 같은 질병이 계속 찾아올 것이란 예고와 함께, 코로나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선언까지 나오면서 방역, 안전에서 경제불안과 생활고의 힘든 상황들은 교회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면서 집회숫자, 참여인원, 재정축소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강하게 미치고 있다. 항간에는 이전의 교인중 70%회복도 어려울 것이란 뉴스도 들린다. 다른 쪽에서는 어차피 오게 되어 있는 4차산업혁명의 흐름에서, 온라인에 의한 새로운 지평이 한층 앞당겨져서 능력있는 목회자나 새로운 스타일의 교회형태가 가능해지리라는 낙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지난 4주간 19명이 시작해서 매주 10여명이 함께 코로나19로 인한 영향과 전망에 대해 개인적 경험나누기, 문제인식, 대안적인 접근방법들의 전망, 그리고 의미의 통찰과 개인적인 선택을 주제로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각자가 흔들리고 붕 떠있는 듯한 이 현실에서 이번 과정을 통해 명료화되고 중심에 다가가는 과정을 통해 함께 생각하는 시간이 위로와 명료화에 도움이 되었다는 피드백을 서로 하였다.


4번째 모임에서 나온 몇 가지 성찰은 다음과 같다:


1라운드:

사회문화적 현상의 문제들이 커뮤니케이션, 권력(힘)의 재정열을 몰고 오고 있다.

무엇이 진정한 안전함이고 어디로부터 가능한가?

학교수업에 있어서 배움의 편차(갭)을 커지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에서 문대통령의 말이 소중히 다가온다. 모두가 연결된 존재라는 발견이 다가온다. 연결됨에 대한 서로의 고민이 새로 시작된 것같다.

언컨텍트의 시대에서 ‘터치’의 느낌, 교감이 안되니까 불안해지는 것 같다. 터치의 새로운 조명이 숙고되어야 한다.

함께 밥을 먹는 게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게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정도로 격상되었다.


2라운드:

풍랑속에 역풍을 만난 제자들과 물위로 길을 내고 가시는 예수에 대한 이미지가 크게 다가온다. 코로나기간동안 풍랑보다 물위로 길을 내고 가시는 분에 대한 주목하기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에서 교회가 무엇인지, 의미있는 신앙공동체와 우리에게 남은 선택이 무엇인지가 질문되고 있다. 1세기 교회와 같은 모습과 안면만 튼 교제에서 좀더 깊은 교제로의 방향, 영성이 깊어지고 본질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방향이 생길 것이다.

교회에서 모여 무엇을 할지에 대해 사역, 활동에 대해 논의하는 일에서 공동으로 무엇을 하는 것도, 접촉하는 것도 부담이 되면서 의미있는 사적인 이야기를 서로 나누게 되었다. 자신이 가진 의미에 대해 이야기 하고, 내면공동체가 단단히 세워지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 주류가 큰교회에서 작은교회로 바뀌어서 행복하다.

-지식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다. 지식에 대한 소유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학교가 너무 크고 전체덩어리로 굴러가고 있다. 내면의 것, 공통의 것을 나누는 것이 정말 어렵다. 더 작아져야 한다. 본질에 대한 간구가 모두에게 있으나, 혼자 그것을 하기가 너무 어렵다. 인도되는 것이 필요하다.

옛날에 교회는 신앙을 위해 순교를 했는데 코로나로 생존을 위해 형식적인 것을 내려놓게 되었다.


3라운드:


구원(도움)받기 위해 교회 간다는 것보다 이제는 본래의 하느님의 창조물로서 그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에 대한 이해의 전환이 일어나야 할 것 같다.

위험의 도전에 대한 불안만큼이나 신의 실재성의 도전에 대한 감각의 상실에 대한 자각도 커야 하지 않을까.

IT를 못 따라가는 소외감에서 코로나로 인해 속도를 줄이게 만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일상의 속도에 힘들어졌을 것이다. 코로나는 일상을 좀더 살펴보라는 뜻을 나에게 주었다.

가끔 유서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로 인해 산다는 게 뭔지 물을 때, 나뭇잎을 볼 때 생생한 존재로 다가온다.


마무리:


코로나로 인해 갑자기 늙어버린 것 같고, 이제는 어떤 개인간 그룹간 싸움에 대해 연민이 생긴다. 코로나이후에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논쟁에 대해 연민이 일어난다.

신앙인으로서 코로나에 대해 잘 적응하면서 넘어갔을 것 같은 데 이 모임을 통해 성찰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분명한 것은 하느님은 자유와 행복을 주시는 분이구나. 감사하고 자유로워졌다.

둥지처럼 나를 감싸주는 따뜻함이 생겼다. 그간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는 데 4번 모임으로 나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제자들이 고기잡을 때 그물을 이쪽으로 던져라는 말이 생각난다. 내 삶의 방향에서 다른 쪽으로 향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와 관련하여 고3입시생 아들과 소상공인 남편으로 인해 크게 흔들렸을 텐데, 이 모임의 성찰로 인해 조금씩 정리되어 가서 감사하다. 밖의 혼란보다 내안의 혼란이 더컸구나라는 배움이 있었다. 밖의 혼란의 도전보다 신의 실재의 상실의 혼란이 다가온다. 이것이 씨앗으로 자리잡아 열매가 맺어지기를....

잠언 16:1절이 다가온다. 내가 계획한 것 같은 데 나의 길을 따로 기획하는 게 있다. 이런 나눔의 시간이 고마웠다.

부서져 열림, 고통을 통해 열림을 배운다.

처음엔 이 모임에서 뭐가 나올까 했는 데, 생각이 정리되어 감사하다. 작은 그러나 실체가 있는 무언가를 살아내는 것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체 모임 마무리:


상황과 활동의 변형(shift)는 온라인화나 방역에 대한 첨단시스템의 개발 등이 뒤따라 주게 되어 삶의 환경은 많이 바꾸어질 것이다. 간단한 예로 자유의 표시였던 마음껏 해외여행을 하는 것은 이제는 어렵게 되었다. 이로 인해 숙박, 여행(항공), 거대한 축제모임 등이 쉽지 않게 되었다. 우리가 모임에서 다룬 것은 코로나로 인해 어떤 본질적인 것, 생명력 있는 것, 나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근본적인 것에 대한 터전에 대한 물음이었다. 왜냐하면 이제는 그토록 당연시 되었던 ‘연결과 나눔’의 시간과 공간이 위험을 전제로 해야 하는 것이 되어서 그만큼 (공통된)의미가 있지 않고는 한두 번은 몰라도 지속성을 주기가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변형이 아니라 좀더 근원적인 것을 향한 변혁(transformation)에 대한 물음이 생긴다. 해답을 명료하게 찾지는 못했지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그 것에 대한 감각을 갖고 씨앗질문을 품으며 살다보면 이 코로나가 위험에 대한 경고만 아니라 무언가를 잊고 있는 것에 대한 가르침으로 오기를 기대한다.


- 나의 움직임은, 시간과 공간을 남과 함께 보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의식적인 선택과 자신의 자발적인 헌신을 통해 일어나는 사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공간에서 갖는 교우들과의 함께 드리는 예배는 어떤 본질적인 것을 여전히 갖고 있어서 나로 하여금 발걸음을 향하게 하고 있는가?(자가 격리에 준하는 경험을 3개월 하고나서 혼자의 자율성도 그리 오래 가는 삶의 방식은 아니다)


- 일상의 신앙생활에서 진정으로 무엇에 대해 내 눈과 가슴이 움직이고 있는가? 보이지 않는 존재인 코로나19의 위험에 대한 것만큼이나, 그동안 간과해온 신앙의 근본적인 것은 놓치고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위험과 안전의 근본적인 터전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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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막고 있는 것이 길이다


우리가 거의 그것에 대해

기대하지 않을 때,

길을 막고 있는 것이 길이다.

부서진 문이 빛을 들어오게 한다.

부서진 심장이 세상을 들어오게 한다.

바람에 흔들린 과일처럼,

우리의 부서진 계획들이 천사들을 매혹시킨다.

그 천사들이 노래하는 새처럼

우리가 감추어온 달콤함 위에서 포식을 한다.

이제는 결국 공개적으로 마음껏

그 달콤함을 즐긴다.

그렇게 또한 우리는 성장한다.


- 마크 네포, <Endless Practi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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